나라를 이해하기
한눈에 보는 한국사
오천 년의 역사를 몇 가지 기준점으로 압축했습니다.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왜 한국인이 민주주의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지, 왜 일본이 여전히 민감한 주제인지, 서울 북쪽 지도 위의 그 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원
건국 신화
하늘 임금의 아들이 사람이 된 곰과 혼인해 단군이 태어났고, 그가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에 특별한 힘을 얻어 민족 정체성과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개천절은 지금도 매년 10월 3일에 이를 기립니다.
중국의 영향 아래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이 지역은 중국의 지배 아래 놓입니다. 이때 형성된 삼한에서 기원전 1세기 무렵 삼국이 등장합니다.
삼국시대
신라, 고구려, 백제가 잇따라 세워져 700년 동안 동맹과 전쟁을 거듭하며 한반도를 나눠 가집니다. 372년 고구려가 처음으로 불교를 국교로 삼습니다.
왕조의 시대
신라의 삼국통일
셋 중 가장 약했던 나라가 당의 지원을 받아 승리합니다. 불교의 황금기가 열리고, 경주에는 그 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의 화강암 본존불이 남았습니다.
고려 왕조
왕건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아랍 상인들이 발음한 것이 오늘날의 Corea가 되었습니다. 청자와 회화의 시대이자 금속활자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1377년에 찍은 직지는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앞섭니다. 그 하권은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으며 한국은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몽골의 침입
중국을 차지한 몽골이 한반도를 유린합니다. 회복에는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8만 1340장의 팔만대장경이 완성되었고, 지금은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건국
이성계가 정변으로 집권해 최초의 왕조 이름을 따 조선이라 칭하고, 성리학을 국시로 삼습니다. 불교는 위축됩니다. 2년 뒤 도읍을 한양, 곧 오늘의 서울로 옮깁니다. 조선은 500년간 이어집니다.
문자를 만든 임금
세종의 치세
나라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경복궁 앞에 동상이 서 있고 만 원권 지폐에 그 얼굴이 있습니다. 번영과 과학, 개혁의 시대였습니다.
한글 창제
가장 위대한 업적입니다. 한자가 사대부의 것이던 시절, 백성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문자입니다. 반포된 글의 이름이 훈민정음, 곧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입니다. 지식을 나누기 위해 정치적 결단으로 만들어진 문자는 세계사에서도 매우 드뭅니다.
임진왜란
일본이 침입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일련의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물리쳤고, 그는 지금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정조
실학을 중시한 개혁 군주입니다. 농업을 개선하고 규장각을 세웠으며, 아버지를 기려 수원 화성을 쌓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흐름은 끊깁니다.
식민지와 전쟁
운요호 사건
일본 군함이 강화도 인근에서 포격을 주고받게 만든 뒤, 침략을 당했다며 조약 체결을 강요합니다. 부산·인천·원산 세 항구가 열렸고, 이는 불평등 조약의 시작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35년간의 가혹한 통치가 이어집니다. 언어와 문화가 억압되고 자원이 수탈되며 강제 징용이 시행됩니다. 수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이 이 범죄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은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갈등의 큰 배경입니다.
3·1 운동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준비한 비폭력 항쟁입니다.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일제의 대응은 투옥과 고문, 처형이었습니다.
분단
일본이 항복합니다. 얄타에서 은밀히 합의된 대로 소련이 38선 이북을, 미국이 이남을 점령합니다. 이 선은 임시적인 것이어야 했습니다.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고 서울은 사흘 만에 함락됩니다. 이후 3년간 38선을 오가는 참혹한 공방이 이어졌고, 유엔군과 수십만 명의 중국군이 개입했습니다. 1953년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맺어지고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졌습니다. 평화조약은 끝내 없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두 나라는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박정희
군사정변으로 집권합니다. 권위주의 체제였지만, 30년 만에 나라를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만든 산업화를 시작했습니다.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립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새로운 군사독재 앞에서 오직 한 도시가 맞섰습니다. 학생을 비롯한 수백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랫동안 북한의 사주로 매도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인정받습니다.
첫 문민 대통령
김영삼의 당선으로 44년간의 군사정권이 막을 내립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젊습니다. 한국인이 그것을 그토록 지키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촛불혁명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수백만 명이 매주 토요일 촛불을 들었습니다. 탄핵과 유죄 판결로 이어졌습니다.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은 혁명이었습니다.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릅니다.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K팝으로 세계에 퍼진 한국 문화의 상징적 순간입니다.